인천섬여행중 장봉도입니다
장봉도는 영종도 삼목 선착장에서 배를타고 40분정도 들어가는 가가운섬중하나지요
석양이 아름다운섬 장봉도 여행에 빠져보실까요
인천은 누가 뭐래도 바다를 품은 해양 도시입니다. 인천 사람들은 대대로 바다에서 삶을 길어 올렸습니다. 때로 카키, 때론 코발트블루 빛깔로 반짝이는 눈부신 인천의 바다 ‘황해’.
그 황금빛 바다 위로 168개의 보석 같은 섬이 떠 있습니다. 그 가운데 100개가 옹진군에 속한 섬입니다.
옹진 섬에 대대로 터전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점박이물범, 저어새, 대청부채와 같은 동식물이 공존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7월 ‘i-view’가 옹진 섬으로의 여행을 떠납니다. 두 발로 걸어 옹진 섬들을 찾아가는 ‘섬 깊고 푸른 그리움’을 연재합니다. 가슴 설레는 옹진 섬 여행. 즐겁고 행복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인어’는 실존하는 것일까, 상상 속에만 있는 것일까
단정하게 쓸어내린 긴 머리칼과 동양적 미인형의 얼굴. 다리를 포갠(?) 채 다소곳이 앉아 있는 인어는 ‘장봉도’를 찾는 방문객들에게 잠깐동안 동화 속 ‘인어공주’를 떠올리게 만든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이라는 이유로 무작정 인어상을 세우지는 않았을 터. 장봉도 옹암선착장에 닿아 가장 먼저 만난 인어상은 이 섬의 전설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 장봉도는 인어공주가 풍요를 안겨준다는 전설을 품은 섬이다. 장봉도 옹암선착장에 닿으면 처음으로 반겨주는 인어상.
장봉도는 과거 우리나라 3대 어장에 손꼽힐 정도로 황금해역이었다. 오래전 어느 날, 이 섬의 한 어부가 날가지 어장에 그물을 쳐 놓았다.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며칠이 지나도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여러 날이 지나고 마침내 무거워진 손맛을 느낀 어부는 그물을 걷어 올린다. 그런데 그 안엔 물고기 대신 인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당황한 어부는 인어를 바다로 놓아주었고, 이후 그물을 던질 때마다 하나 가득 물고기들이 잡혀 올라왔다. 인어의 전설을 따라, 장봉주민들은 인어상을 세웠다.


▲ 장봉도엔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거대한 모래사막이 있다. 사람들은 이를 풀등이라 부른다.
온 마을이 들썩들썩했던 마을 축제 ‘당산제’, 어업부터 김양식에 이르기까지
‘인어의 전설’은 풍어를 기원하고 자연에 감사하는 장봉도 사람들의 소망을 담고 있다. 당산목 앞에서 시작해 마을 한 가운데서 몇일 동안 치러진 ‘당산제’는 풍어와 풍년을 바라는 마을 사람들의 기원이었다.

▲ 장봉도는 삼국시대 이후 중요한 군사요충지였다. 이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봉화연기가 피어올랐다. 봉화산에 있는 봉화대의 모습.
설을 쇠고 난 장봉도 사람들은 처음 마을의 오래된 나무인 당산목 앞에서 고사를 지내며 당산제를 시작했다.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이었으므로 사람들의 마음도 주머니도 넉넉했다. 만신이 굿을 시작하면 사람들은 돼지머리 입에 돈을 꽂고 절을 올렸다. 당산제는 마을의 너른 공터로 옮겨 며칠동안 계속됐다.

▲ 말문고개는 말을 방목하던 목장에서 말이 다른 곳으로 넘어가지 못 하도록 경계를 해 놓았던 지점이다. 현재는 고갯마루로 차량들이 다니고 있으며 봄이면 길가를 따라 벚꽃이 만발해 벚꽃길로 사랑을 받고 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당산목에 꽂혀있는 과자와 과일을 빼먹느라 신이 나는 계절이었다. 굳이 먼 바다로 나아가지 않더라도 장봉도 주변 갯바위에선 망둥어, 놀래미, 우럭, 장어 등을 잡을 수 있었다. 물이 빠져 갯벌이 드러나면 모시조개, 동죽, 바지락, 상합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 장봉김은 약품을 쓰지 않고 자연 그대로 양식을 하고 있어 건강식을 찾는 사람들로부터 인기가 높다.
요즘 장봉도를 대표하는 수산물 가운데 인기가 높은 것은 수산물이 ‘장봉김’이다.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높아진 ‘장봉김’은 독특한 맛과 높은 영양으로 인기가 높다. 약품처리를 하지 않고 청정바다에서 햇빛에 노출시키는 지주식 방법으로 양식하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잡은 어업과 농업이 생계방식이던 장봉도에 김양식이 시작된 건 1970년대 말이다. 장봉주민 몇 명이 시작한 김양식은 나중에 전체 주민의 3분의1 가량 뛰어들 정도로 장봉도의 주 수입원으로 자리잡는다. 무엇보다 장봉도의 바다는 김양식을 하기에 매우 적합한 수온을 갖고 있다. 그러나 1990대 초 인천국제공항 공사가 시작되며 김양식을 하는 주민들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현재 장봉김은 뛰어난 맛과 영양으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가을이면 장봉도는 ‘포도의 섬’으로 변한다. 촘촘하지 않고 성글게 키워 최대한 해풍을 많이 맞도록 해 키우는 장봉포도는 예약제로 출하 되기 전 마감되기 일쑤이다.
장봉목장 마성터와 봉화산 봉수대, 구황비…군사적 요충지와 목민의 섬
장봉도엔 조선 전기인 1454년 말을 방목하기 위한 장봉목장이 조성됐다. 국사봉 동쪽 말문고개를 경계로 한 동쪽 전역이 목장구역이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엔 ‘강화부 남쪽 30리에 장봉도가 있다. 둘레가 40리고, 너비는 5리이며 소를 방목하는데 통진현에서 관장한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땅이 기름져서 풀이 풍부하며 강화도 부속도서 중에서는 매음도 목장에 이어 두 번 째로 규모가 컸던 목장’이었으며 말을 관리하던 ‘감목관’을 배치할 정도로 중요한 목장이었다고 전한다.
이로 미뤄 처음엔 소목장이었으나 군마의 필요성이 대두되며 말을 같이 사육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장봉목장의 흔적은 말문고개를 중심으로 산 중턱과 골짜기에 쌓은 석성으로 남아 있다. 석성은 말이 목장을 넘어가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시설이었다. 말문고개는 작은 구름다리가 놓은 2차선 고갯마루로 차량들이 오가고 있다.

▲ 말문고개 옆 무장애숲길은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가 걸으며 장봉도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길이다.
장봉목장과 함께 장봉도엔 군사시설이 하나 더 있었다. 봉화산(130m) 정상의 ‘봉수대’가 그 것이다. 장봉도 일대 지역방어를 담당한 봉수대에선 하루에도 몇 차례 정기적으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산 정상이나 능선에 설치된 봉수는 위급할 때 연기를 피어 정보를 전하는 수단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장봉도 봉수대는 조선 숙종 때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봉수대는 원형으로 쌓은 화구부만 남아 있는 상태다.
화구부 바닥엔 기단석으로 보이는 석렬의 일부가 남아있다. 기단의 석렬은 깨진 돌로 쌓았으며 화구부는 높이 150cm, 아랫부분 두께는 100cm, 윗부분은 50cm 정도 된다. 장봉도 봉수대는 북서쪽의 강화도 볼음도 봉수와 약 18.5km 거리로 마주보고 있다. 역사적으로 장봉도는 중요한 어장일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요충지였던 셈이다.
좋은 땅엔 좋은 사람들이 사는 것일까. 조선 말기인 1901년 전국적으로 흉년이 덮친 때가 있었다. 장봉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주민들이 먹을 것이 없어 배를 주리고 있을 때였다. 장봉도엔 조용교 참봉과 이정훈 진사란 사람들이 있었다. 이정훈은 1894년 장봉도에 들어와 서당을 설립, 교육에도 힘을 쏟은 인물이다. 주민들은 이들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구황비’를 세웠다. 높이 104cm, 폭 37cm, 너비 19cm의 구황비는 장봉출장소 안에 있다.
116년 역사의 ‘옹암교회’와 장봉도 청소년들을 위한 ‘푸른고등공민학교’

▲ 옹암해변은 경사가 완만하고 모래사장이 잘 조성돼 있어 가족단위로 많이 찾는 관광지이다. 주변에 식당과 펜션도 많다. 옹암해변의 야경.
장봉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는 1906년 설립된 ‘옹암교회’이다. 장봉도 유지였던 이재술은 강화본도 내리교회 교인 윤명삼, 김광찬, 김인규 등의 전도로 교인이 된 뒤 내리교회에 다니다 자신의 집 사랑방에서 교회를 시작한다. 1907년 이동휘가 마을에 와서 강연을 한 뒤 이재술은 자신의 밭에 예배당을 짓고 학교(강습소)도 세웠다. 옹암교회(담임목회자 박동수, 기독교 대한감리회)는 장봉도 200번길 26-7 언덕에 노아의 방주처럼 서 있다.
장봉도엔 ‘푸른학원’이란 교육재단이 있었다. 푸른학원은 신앙인이자 교육자인 송두영이 세운 교육재단으로 그는 1968년 장봉도에 ‘푸른고등공민학교’란 교육기관을 운영했다. 섬이라는 여건으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 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중등교육기관이었다. 푸른고등공민학교는 1984년까지 운영되다 폐교했고 지금은 건물만 남아있다.
날가지, 사염 등 아름다운 무인도와 벚꽃 산책로, 가족들이 많이 찾는 옹암해수욕장


▲ 장봉도엔 조개껍데기 등 자연물로 만든 기념품과 특산물이 넘쳐난다. 조개껍질을 활용해 만든 인어공주 인형과 장봉에서 생산한 땅콩과 고춧가루.
영종도의 서쪽, 강화도의 남쪽에 위치한 장봉도는 산봉우리들이 길게 이어져 있다. 동서의 길이 약 9km, 남북 폭 1~1.5km의 크기로 높은 곳에 오르면 남쪽으로 무인도인 날가지, 사염, 아염이 눈에 들어온다. 물이 빠지면 주민들이 들어가 바지락과 조개를 캐러 들어간다. 그 위쪽 서만도와 동만도는 저어새가 머물다 가는 섬이다. 한 때 우리나라 새우젓 4대어장 가운데 한 곳도 바로 이 곳이었다.
장봉도엔 트레킹하기 좋은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가막머리에서 윤옥골로 이어지는 1.5km의 해안산책로에선 여러 형태의 수석을 감상할 수 있다. ‘무장애체험길’ 등 섬을 가로지르는 산책로 또한 잘 나 있다. 장봉도에서 가장 높은 고개인 ‘말문고개’는 봄이면 옹암해변까지 벚꽃길이 열리는 벚꽃명소로 자리잡았다.

▲ 인어가 사랑한 장봉도의 바다에 해가 들어가고 있다.
‘옹암해변’은 장봉도에서 가장 긴 백사장을 자랑한다. 물이 깊지 않고 잔잔해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하기에 좋고 갯벌 바지락체험도 즐길 수 있다. 해변을 둘러싼 노송숲에선 요즘에도 알록달록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눈에 띈다. 찾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주변엔 안락한 숙소와 식당이 늘어서 있다. 장봉도는 늘 우리곁에 있는 다정한 가족 같은 섬이다.
글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 사진 홍승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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