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이 드문 곳으로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여기, 번잡한 일상을 잊고 오롯이 자연과 나를 마주하기에 맞춤한 여행지가 있다. 걷고 사색하고, 자연에서 얻은 밥상으로 허기를 채우는 동안 짧은 하루가 간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뱃길로 한 시간 거리(34km)의 섬, 승봉도. 봉황이 나는 모습과 닮아 이름 붙여진 섬이다. 여의도 면적의 4분의 1에 지나지 않지만, 곳곳에 봉황이 날면서 떨궈 놓은 예쁜 풍경들이 널려 있다.

▲ 하늘에서 본 승봉도 선착장에서 마을로 가는 길. 선착장에서 걸음을 옮기면 호젓한 마을길, 숲길, 바다길이 이어진다. 걷고 사색하고, 자연에서 얻은 밥상으로 허기를 채우는 동안 짧은 하루가 간다.
선착장에서 걸음을 옮기면 호젓한 마을길, 숲길, 바다길이 이어진다. 해변은 작은 섬에 어울리지 않게 광활하다. 해수욕은 물론이고 산행과 배낚시, 갯벌 체험도 할 수 있다. 섬의 북쪽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하고 있다. 기암괴석이 떠 있는 바다 위로 노을이 앉는 모습을 만나면 황홀한 풍경에 할 말을 잃게 된다.
늦가을과 초겨울의 시계(視界)는 깨끗하고, 섬엔 때 묻지 않은 자연이 늘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맨몸으로 가도 섬 사람들의 후한 인심과 넉넉한 음식으로 마음이 든든하다.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아도 되는 섬
선착장에서 뭍 사람들을 맞아주는 ‘승봉선창횟집&민박’의 민경용(52) 대표. 토박이답게 소소한 이야기로 뭍사람들의 호기심을 채워주었다.
“맨몸으로 오시면 됩니다. 패키지에 갯벌 체험, 배낚시, 그물낚시, 삼시세끼가 다 포함돼 있습니다. 요즘 섬 여행은 현지에서 준비한대로 즐기시는 추세입니다. 섬 사람처럼 직접 잡은 물고기로 회를 떠먹고, 숲길 산책하고, 노을 구경하고.”
섬에는 10여 곳의 민박집이 성업 중이다. 어느 집이나 음식 맛이 좋다. 장화, 텐트, 낚시도구 등 모든 것을 빌려 섬을 즐길 수 있다. 민박집에 딸린 슈퍼에서는 음료수나 간단한 것들을 살 수 있다.

▲ 섬에서 나고자란 삼형제와 그의 아들들이 함께 운영하는 승봉선창횟집&민박. 삼시세끼, 배낚시, 갯벌 체험 등이 포함된 패키지로 섬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 섬에는 10여곳의 민박집이 있다. 어느 집이나 음식 맛이 좋다.
섬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은 이일레해수욕장(길이 1.3km). 옥색 물빛과 고운 모래, 울창한 숲 등 해수욕장으로서 갖춰야 할 요소들을 빠짐없이 준비하고 있다. 가을 하늘이 내려앉은 바다는 눈이 시리게 푸르다. 넓고 긴 백사장은 썰물 때도 곱고 부드러운 모래가 드넓게 펼쳐질 뿐 갯벌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한여름엔 파라솔이 설치되고 수상레포츠도 운영된다.

▲ 옥색 물빛과 고운 모래, 울창한 숲을 자랑하는 이일레해수욕장. 백사장이 발달해 썰물 때도 곱고 부드러운 모래가 드넓게 펼쳐질 뿐 갯벌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한 개의 섬, 한 개의 호젓한 마을
승봉도는 아득한 옛날 ‘신씨’와 ‘황씨’가 고기를 잡던 중 풍랑을 만나 대피했던 곳이다. 며칠 동안 굶주려 시장기를 달래고자 섬을 둘러보니 경관이 수려하고 땅이 비옥해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섬의 이름도 신씨와 황씨의 성을 따서 ‘신황도’ 라 불리다가 이곳 지형을 본떠 ‘승봉도’로 바뀌었다.
신씨와 황씨는 승봉도 산에 올라 자식을 점지해 주기를 빌었다. 지금도 섬 사람들은 이곳에 물을 떠 놓고 임신, 승진, 시험 합격 등을 기원한다. ‘90m만 올라가면 소원을 이뤄준다니.’ 어슬렁 어슬렁 여유롭게 올라도 30분이면 정상이다. 전망대에 오르니 해안길과 주변의 섬 등 서해바다가 모두 발 아래 있다. 바다를 건너온 시원한 바람 한줄기가 뺨을 어루만진다.

▲ 섬의 동쪽 끝,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신황정. 아득한 옛날 신씨와 황씨는 이곳에 올라 자식을 점지해 주길 빌었다. 지금도 섬 사람들은 이곳에 물을 떠다 놓고 임신, 승진, 시험 합격 등을 기원한다.
승봉도에는 80가구 160여명이 선착장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산다. 신씨와 황씨가 많다. 마을 이름은 승봉리로 마을이 하나다. 섬에는 버스나 택시 등 대중교통이 없다. 걸어 다니며 때 묻지 않은 자연경관과 정겨운 인심, 호젓한 마을 풍경을 직접 체험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 선착장에서 마을로 걸어가는 길, 논과 밭을 품은 오목한 분지가 펼쳐진다. 추수를 끝낸 논엔 가을 햇살이 내려앉아 있다. 길에서 만난 민종만 어촌계 총무, 황갑준 노인회장, 황영욱 승봉리 이장(왼쪽부터).
선착장에서 마을로 걸어가는 길, 가장 먼저 논과 밭을 품은 오목한 분지가 펼쳐진다. 추수를 끝낸 논엔 가을 햇살이 내려앉아 있었다.
황영욱(70) 이장은 “30만 평을 간척했어요. 현재 논 10만 평, 밭 10만 평에서 농사를 집니다. 한때는 한 해 농사로 세 해를 지낼 만큼 부자 섬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승봉도의 특산품은 해풍 맞고 자란 ‘승봉도 찰흑미’. “찰흑미는 땅에서 나는 흑진주입니다. 우리 승봉도의 보물. 찹쌀이라 쫄깃쫄깃하고 향이 좋아 밥맛이 끝내줘요. 없어서 못 팔아요.”
숲길 따라, 해안길 따라... 느리게 걷는 섬
승봉도는 아담하고 산세가 순하다. 천천히 걸어도 3~4시간이면 섬 전체를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숲과 바다, 이웃한 섬을 길동무 삼아 아슬랑대는 정도로 충분하다.
섬 지형의 주맥을 이룬 야트막한 당산(68m)은 수림에 뒤덮여 가볍게 산보하기에 좋다. 소나무 숲에서 뿜어내는 푸른 기운이 폐 속까지 맑게 한다. 섬 사람들은 그 숲 한가운데로 길을 내고 ‘삼림욕장’ 팻말을 붙여 두었다. 숲속 오솔길은 해안 산책로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두 발로, 두 바퀴로 트래킹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친다.
삼림욕장에서 목섬 방면으로 내려오면 승봉 최고의 비경으로 꼽히는 부두치 해변이다. 파도가 많이 부딪친다 해서 ‘부디치’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모래와 자갈, 조개껍데기로 형성된 아름다운 해변이다. 소나무 숲이 우거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다로 길게 뻗어나간 목섬을 만날 수 있다.

▲ 부두치 해변에서 목섬 가는 데크길 풍경. 소나무 숲이 우거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다로 길게 뻗어 나간 목섬을 만날 수 있다.
길에서 만난 한 여행 작가는 승봉도를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아름다운 섬으로 꼽았다. “섬 곳곳에 봉황이 날면서 떨궈 놓은 예쁜 풍경들이 널려 있어요. 울창한 소나무 숲의 오솔길, 바닷가의 기암 괴석이 감탄을 자아냅니다. 해변도 모래 해변, 자갈 해변, 혼재 해변까지 다양해요.”

▲ 산과 바다, 하늘길을 잇는 해안 산책로. 승봉도 트래킹 코스는 마을길, 숲 속 오솔길, 해안 산책로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쉬엄쉬엄 섬을 한 바퀴 걷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친다.
바닷길 굽이굽이 기묘한 바위들의 곡예
목섬을 돌아 섬 북쪽으로 올라가는 해안은 기암괴석 전시장이다. 바닷길 굽이굽이 기묘한 바위들이 예술 작품처럼 펼쳐져 뭍에서 안고 온 시름을 잊게 한다. 소리개산 밑에는 촛대바위가 있다. “촛대바위는 섬 아낙들이 바닷일 나간 남편의 안전을 빌던 곳이에요. 하늘이 이에 감동해 바다에서 바위가 솟아난거지요.”


▲ 촛대바위 산책로에서 만난 풍경. 섬 북쪽으로 올라가는 해안은 기암괴석 전시장이다. 바닷길 굽이굽이 기묘한 바위들이 예술 작품처럼 펼쳐져 뭍에서 안고 온 시름을 잊게 한다.
9대째 승봉도에 살고 있는 황갑준(76) 노인회장은 “승봉도는 아담하지만 즐길거리·볼거리가 풍부하다. 소나무 숲이 무성하고, 갯티길 따라 기묘한 바위들의 곡예가 이어진다”며 “설화를 상상하며 걸으면 더 재미있다”고 말했다.


▲ 승봉도의 명물인 남대문바위(코끼리바위)와 부채바위. 빛의 방향과 파도의 크기에 따라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한다. 저녁 노을이 내려앉아 금빛으로 일렁이는 부채바위는 자연의 신비함을 느끼게 해준다.
촛대바위에서 20분 정도 발품을 팔면 승봉도의 명물인 남대문바위를 만난다. 바위모양이 남대문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가운데가 뻥 뚫려 있어 코끼리바위라고도 불린다. 이 문으로 연인이 통과하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전설이 있다. 바위 벼랑 끝에는 소나무가 자라 운치를 돋우고 있다.
남대문바위 바로 옆에는 삼형제바위와 부채바위가 나란히 제 모습을 뽐낸다. 햇빛을 받으면 황금색으로 변하는 부채바위의 모습이 이채롭다. 북쪽 해안선을 따라 병풍처럼 들어선 기암괴석은 배를 타고 바다에서 바라보면 더욱 실감난다.
바다 사막에 시름을 묻다... 사승봉도
섬 남쪽 해변에서는 때 묻지 않은 청정 자연을 자랑하는 무인도가 코앞이다. 사승봉도, 상공경도, 하공경도... 이름은 낯설지만 알고 보면 친숙하다. ‘무한도전’, ‘1박2일’, ‘정글의 법칙’ 등 각 방송사의 대표 예능을 통해 이미 얼굴을 비쳤다. 드넓은 백사장, 깨끗한 자연을 품은 덕에 여러 방송의 무대가 됐다.

▲ 인천 옹진군의 무인도 사승봉도는 모래가 만든 섬이다. 쉼없이 걷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 일으키는 광활한 은빛 모래밭은 길이가 4km에 달한다.
사승봉도는 승봉도에서 약 2.2km 떨어진 무인도로, 둘레가 3km 정도 되는 작은 섬이다. 섬의 북쪽과 서쪽 해안은 모래 해변인 반면, 동쪽은 거칠고 경사가 급한 갯바위 해변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모래가 많아 사도(沙島)로도 불리며, 썰물 때면 길이 4km, 폭 2km의 거대한 은빛 모래밭을 내보인다. 하얀 포말이 다녀간 모래 벌판엔 온통 제 집 찾아들어간 게 구멍이 빼곡하다.
바다 건너엔 이작도와 승봉도, 상공경도 등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어 한 폭의 그림 같다. 백사장 뒤로는 무릎까지 오는 수풀지대 너머 곰솔과 참나무, 오리나무 등이 울창하다. 석양과 밤이 되면 더욱 돋보이는 은하수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 백사장 뒤로는 무릎까지 오는 수풀지대 너머 곰솔과 참나무, 오리나무 등이 울창하다
인천섬여행 승봉도의 아름다움에 반해버린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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