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 사이트 확인: googleef0228e99f38e49a.html google-site-verification: googleef0228e99f38e49a.html 사람들의 발길이 적은섬 백야도 신비의섬
본문 바로가기
산행이야기

사람들의 발길이 적은섬 백야도 신비의섬

by 만초대박 2022. 11. 12.
728x90
반응형

“국민학교때는 바닷가에서 ‘뻑~뻑~뻑~‘ 민어 우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무섭기도 했고 잠도 설치기도 했어요. 그때는 뻘에서 엄청나게 큰 민어를 잡았어요.” 주민 황명규(70)씨가 말하는 어린시절 백아도 바다에 대한 추억이다. 옛날 백아도 바다에서는 민어, 조기, 새우가 많이 잡혔다. 백아도 배양장 앞 자갈해변에서 새우를 찌고 말려서 팔았다.


▲ 옹진군 덕적면에 속한 백아도는 울도와 함께 덕적도 서쪽 끝에 위치한다. 덕적도에서 남서쪽으로 14㎞ 떨어져 있다.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고, 깨끗한 것이 매력이다.

남봉 오르면 덕적군도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옹진군 덕적면에 속한 백아도는 울도와 함께 덕적도 서쪽 끝에 위치한다. 덕적도에서 남서쪽으로 14㎞ 떨어져 있다. 섬의 모양이 ㄷ자로 마치 ‘백상어아가리’같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과 김정호가 <대동여지도>에서 그 모습이 임금님께 허리굽혀 절을 하는 모습을 닮아 ‘배알한다’는 뜻으로 ‘배알도’에서 유래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큰말과 작은말을 합쳐 25가구 30여명의 주민이 산다. 대부분이 60대 이상 노인층이다.

백아도는 서해 바다의 먼 섬이다.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고 깨끗한 것이 매력이다. 백아도의 풍경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선착장에서 시작하는 산길을 종주하거나 공룡능선으로 불리는 남봉(143m)을 올라야 한다. 주민들은 남봉에서 바라보는 백아도 풍경이 백미중의 백미라고 말한다.




▲ 남봉으로 오르는 길은 암릉(巖陵)코스로 거칠고 가파르다. 좁은 등산길 바로 옆으로는 해안절벽이 펼쳐진다. 한눈을 팔수 없는 산행길이다. 아래 사진은 남봉 정상.

남봉으로 오르는 길은 암릉(巖陵)코스로 거칠고 가파르다. 산을 오르다보면 윤슬로 반짝이는 서해바다의 아름다운 풍광에 시선을 훅 빼앗기게 되지만 발밑은 바로 뚝 떨어지는 해안절벽이다. 한눈을 팔수 없는 산행길이다. 남봉으로 가는 등산로는 나무와 풀이 빽빽하게 들어차 길을 만들면서 가야 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여름날, 땀에 범벅이 되어 힘들게 오른 남봉의 경치는 탄성을 부를 정도로 비경이다.




▲ 남봉에 오르면 덕적군도의 보석같은 다도해 풍경을 파노라마로 볼 수 있다. 남봉 바로 옆은 무인도인 오섬이다. 오섬의 또 다른 이름은 '까그매'(아래 사진)다.

남봉에서는 덕적군도의 보석같은 다도해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굴업도, 울도, 광대도, 선갑도, 도랑도, 벌섬 등을 조망할 수 있다. 남봉에 서면 백아도의 비경중 하나인 오섬(烏島, 까그매)이 바로 눈앞에 보인다. 멀리서 보면 백아도와 이어진 섬처럼 보이지만 오섬은 따로 떨어진 무인도다. 오섬의 또 다른 이름인 ‘까그매’는 백아도 토박이들이 부르는 말이다.


▲ 백아도 남봉으로 오르는 길은 해안 절벽이다. 눈으로는 에메랄드 빛 서해바다를 감상할 수 있으나 발 아래는 조심해야 할 해안 절벽이다.

동백꽃 자생지, 봄이면 섬이 온통 붉게 물들어

백아도는 다른 섬들 보다 바람이 세다. 섬 앞에 바람막이가 없기 때문이다. 문갑도는 덕적도가 바람길을 막아주고 울도는 바람의 반대방향으로 섬이 앉아 있는데 백아도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는 형세다. 겨울에 매서운 북서풍이 불면 파도가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만큼 높아지고, 강풍에 집도 물건도 날아간다. 3년 전 태풍 ‘링링’이 왔을 때도 피해가 상당했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 드론으로 촬영한 백아도 전경. 작은말과 그 앞에 해변이 펼쳐져 아름다운 풍경이다.

백아도는 동백꽃 자생지로 유명하다. 섬은 봄이 되면 동백꽃으로 온통 붉게 물든다. 백아도에서 자라는 동백은 우리나라 자생종인 홑동백이다. 남봉과 오섬, 산정상 등에 군락지가 있다. 주민들은 봄에 나물캐러 산에 가면서 동백꽃 구경을 했다고 전한다.

주민들은 큰말과 작은말에 나눠 살고 있다. 큰말과 작은말은 산을 하나 넘어가야 할 정도로 거리가 먼 동네로 옛날엔 뗏목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현재는 큰말에 9가구, 작은말에 16가구가 산다. 백아도의 마을이름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졌다. 큰말은 해군부대가 들어오면서 ‘부대마을’이 됐으며, 발전소가 생기자 ‘발전소 마을’로 바뀌었다. 작은말은 ‘큰얼리’라고도 불렀는데 ‘학교마을’로 불리다가 보건소가 들어오면서 ‘보건소마을’이 되었다.




▲ 백아도 큰말에는 해군기지가 있었다. 해군기지가 있었다는 흔적은 보여주는 헬기장과 격납고.(위사진). 백아도의 중심은 원래 큰말이었다. 번성했던 큰말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빈집이 된 기와집(아래).

큰말엔 오랫동안 해군부대 주둔, 1996년 철수

 

큰말에는 해군부대가 오랫동안 주둔했다. 큰말 산을 닦아 산 아래엔 해군 내무반과 식당을 만들었고 산꼭대기에는 레이더기지를 세웠다. 또 해군항공대가 운영한 헬기장과 격납고도 있었다. 해군소대원이 55명 정도 됐다고 한다. 1965년에 창설된 해군기지는 남북관계가 좋아지면서 1996년 경 덕적도로 철수했다.

백아도는 해군부대 덕분에 50년 전부터 부대에서 쓰던 전기를 끌어다 전구를 끼워 불을 밝히기도 했고 전화도 쓸 수 있었다. 군인들은 마을의 길을 넓히거나 논농사를 할 때면 팔을 걷어 부치고 도왔다. 황덕규 이장은 전국에서 모인 군인들이다 보니 모를 심을 때 보면 손이 안보일 정도로 농사를 잘 짓는 사람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벼농사를 했던 논은 농사를 안 한지 오래돼 풀숲으로 변해 있었다. 마을주민들은 명절이 되면 군인들과 마을잔치를 열어 음식과 막걸리를 나눠먹곤 했다.

태양과 풍력 이용한 ‘저탄소신재생에너지섬’으로 각광

백아도는 굴업도, 지도와 함께 저탄소 신재생에너지 섬으로 지정돼 있다. 큰말에는 2000년 5월에 준공된 내연발전소가 있고, 마을의 집집에는 태양열판이 설치되어 있다. 햇볕이 좋거나 바람이 잘 불 때는 태양열과 풍력을 활용해 전기를 생산하지만 흐린 날이나 겨울에는 디젤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만들어 쓴다.

이곳의 국민학교는 1996년 폐교됐고 지금은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다만 그 위치가 큰말과 작은 말 사이에 있어, 아이들은 조붓한 산길을 가로질러 학교를 다녔다. 황명규(70)씨는 “내가 학교를 다닐때는 학생수가 300명은 됐다”며 “학생수가 많아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서 학교를 갔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 내연발전소가 위치한 큰말. 백아도는 저탄소 신재생에너지 섬으로 지정되어 있어 큰말 내연발전소 앞에는 태양열판이 설치되어 있다.

신풍금(81)할머니는 “우리가 아가씨일때는 백아도에 주민들이 500~600명 정도 됐었다”며 “그때는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고 회고했다.
예전엔 파출소도 있었는데 지금은 치안이 잘 유지되면서 폐쇄된 상태다. 파출소는 덕적파출소 백아초소였다.

백아도에는 4개의 해변과 4개의 선착장이 있다. 선착장이 4개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어업이 발달한 섬이었음을 의미한다. 백아도 해변들은 이름이 독특하다. 토박이들은 큰말 앞 해변을 ‘갱변’이라했고, 배양장 앞은 ‘목기미해변’, 큰말과 작은말 사이 해변은 ‘큰장술’, 작은말 바로앞 해변은 앞장술로 불렀다. 백아도 해변은 모래사장이 넓고 시원하게 펼쳐지며, 큰말 발전소 앞 해변 주변으로 기암괴석이 펼쳐져 볼거리를 더한다. 최근엔 큰말과 작은말 사이에 위치한 해변엔 관광객들을 위한 샤워시설을 갖춘 화장실을 지었다.

백아도는 다른 섬보다 물로 인한 애로사항이 많았다. 물은 지하수를 정수기로 정화시켜 먹는데 정수기가 고장나면 섬 전체가 물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 짠물이 들어간 물은 샴푸로 머리를 감을 수도 없고, 커피를 타도 프림이 녹지를 않는다고 주민들은 하소연한다. 정수기가 고장 나 물에 짠기가 돌면 인천시에서 먹는 물을 보내주고 있다.

백아도에 오면 무조건 1박을 해야 한다. 배가 하루 한번만 섬에 닿기 때문이다. 사람의 발길이 쉬 닿지 못하기에 자연환경은 여느 섬 보다 잘 보존되어 아름답다. 섬의 풍광이 너무 예쁘고 황홀해 떠나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백아도 바다에선 더 이상 밤새 사람들의 잠을 설치게 했던 민어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 대신 섬을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소중한 삶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글 이용남 i-View 편집위원, 사진 유창호 자유사진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