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 사이트 확인: googleef0228e99f38e49a.html google-site-verification: googleef0228e99f38e49a.html 천연 신비의섬 소청도의 신비를 벗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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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이야기

천연 신비의섬 소청도의 신비를 벗기다

by 만초대박 2022.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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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나 지구별에 이런 바위가 있었다니. 난 그동안 모래사막과 보아뱀, 여우와 장미가 지구별의 전부인 줄 알고 있었는데….’ 어린왕자가 소청도에 안착한 건 유난히 하얗게 빛나는 암석에 끌려서였다. 바다 한 가운데서 반짝이는 하얀 색. ‘분바위’는 비취색 바다와 대비돼 더 환한 빛깔을 발산하고 있었다.


▲ 소청도는 12억년~8억년 전 후기 원생대 형성된 ‘스트로마톨라이트’ 등 희귀 화석이 즐비한 섬이다. 분을 바른 것처럼 하얘서 이름 붙여진 ‘분바위’ 위로 은하수가 흐르고 있다.

어린왕자가 바닷물이 빠지면 열리는 ‘갯티길’을 걷기 시작했다. 분바위를 손으로 쓰윽 훔쳐보았다. 생각처럼 흰색가루가 손에 뭍어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질감은 매끄럽게 느껴졌다.
조금 더 걸어가자 줄무늬가 선명한 암석들이 나타났다. 서로 다른 색깔의 돌을 얇게 썰어 붙여놓은 것처럼 보이는 돌들이었다. 무지개 무늬를 한 돌들도 눈에 띄었다. 지구별 사람들은 이를 ‘스트로마톨라이트’라고 부른다고 했다.

먼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이 분바위를 세차게 때렸다. 파도가 가세하며 하얗게 부서졌다. 어린왕자가 바람을 마주하고 섰다. 그의 눈동자가 비취색으로 일렁이는 가을바다를 반사했다.


▲ 천연기념물 508호로 지정된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남조류 세균이 쌓여서 형성된 퇴적층이다.

12억년 전 후기 원생대 형성된 ‘스트로마톨라이트’ 등 희귀 화석 즐비

12억 년 넘게 오롯이 자리를 지켜온 섬. 소청도는 마치 어린왕자가 다녀갔을 법한 ‘소혹성’처럼 보인다. 태초의 모습을 간직한 ‘시원의 세계’ 같기도 하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땅이라 느끼게 만드는 아이콘은 후기 원생대에 형성된 화석들이다. 사암, 셰일, 석회암, 현무암과 12억 년~8억 년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이 섬엔 산재한다. 남조류 세균이 쌓여서 형성된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화석으로 천연기념물 508호로 지정됐다. 예동 포구, 낭너머, 노하동 포구, 소청등대 남동쪽 해안, 분바위 어럭금, 분바위 주차장 등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소청도 남동해안을 따라 길게 분포한다.


▲ 분바위를 하늘에서 내려다본 풍경. 분바위 뒤쪽으로 희귀 화석들이 산재한다.​

하루 두 번 물이 빠질 때, 분바위 앞 바다는 ‘홍합밭’으로 변한다. 말 그대로 작은 놈에서부터 어른 손바닥만 한 홍합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홍합들이 바위에 달라붙은 채 생명의 숨을 쉰다. 홍합은 마치 바위와 한몸처럼 보인다. 단단히 붙어 있어 홍합을 캐려면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

팔미도등대 다음 세운 ‘소청등대’ 지금도 등대지기가 불 밝히고 꺼

분바위에서 소청동로를 지나 소청서로를 따라 가면 서쪽 해안절벽 끝에서 ‘소청등대’를 만난다. 분바위만큼이나 하얀빛깔의 높이 9m의 등대다. 1908년 1월에 처음 불을 밝힌 소청등대는 우리나라 최초 팔미도등대(1903)에 이어 두 번 째로 세운 것이다. 이 작은 섬에 등대를 설치한 것은 소청도의 해상교통여건 때문이었다.


▲ 소청도등대는 팔미도등대에 이어 1908년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세운 등대이다. 등대는 원격 운영으로 바뀌고 있는 상태이나 소청도등대는 지금도 등대지기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 소청도등대 야경

소청도는 오래전부터 서해5도는 물론 중국 산둥반도와 만주를 오가는 길라잡이 섬이었다. 일제강점기 땐 서해안 최대 어업전진기지로 역할을 했다. 일본인들이 대청·소청도 앞바다를 아예 자신들의 독점어장으로 묶어놓을 정도였다. 고래잡이 포경선들은 산둥반도 인근 해상까지 출항했는데 이때 대청·소청도 위치를 알 수 있는 표식이 필요했다. 그렇게 소청도에 등대의 불이 켜졌다.

소청등대를 걸어서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다. 몸을 날려버릴 것 같은 강풍과 가슴까지 차오른 수풀을 헤치며 절벽길을 올라가야 한다. 길은 힘들지만 목적지에 닿으면 시원한 눈맛을 볼 수 있다. 소청등대 입구엔 1908년 쌓은 돌담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의 등대는 2006년 등대전시관과 함께 신축한 것이다.

2022년 전국의 등대들이 무인등대로 전환하는 추세. 그렇지만 소청등대에선 여전히 등대지기가 등대를 지키고 있다. 등대지기들은 3교대로 24시간 근무하며 외항선들의 길잡이를 해주고 있다. 북한이 발사하는 GPS방해전파를 차단하는 것도 소청등대의 임무이다. 등대체험을 하고 싶다면 인천지방해양수산청 홈피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추첨을 통해 당첨되면 등대 VIP숙소에서 잠을 자는 행운도 얻을 수 있다. 소청도의 등대지기는 오늘도 어김없이 해가 질 때 불을 밝히고 해가 지면 등을 끈다.


▲ 소청도 주민들이 모여살고 있는 예동포구 전경.

철새들의 플랫폼, 조류충돌방지협회 둥지, 봄가을이면 ‘탐조’인들로 북적

뱃길만큼이나 중요한 하늘길도 소청도를 가로지른다. 아담한 섬의 크기와 서해 끝이라는 조건 때문에 소청도는 많은 철새들이 쉬어가는 플랫폼이다. 봄철엔 번식지로 북상하는 철새가 서해를 건널 때, 가을엔 북쪽에서 내려온 철새가 바다를 건너 산둥반도 방향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머무는 곳이다. 황조롱이, 바다직박구리, 갈색지빠귀 등 1988년부터 지금까지 소청도에서 관찰된 철새종만 325종 이상이다. 우리나라 철새종의 약 70%에 해당하는 수치다. 철새의 중간기착지인 소청도에 2019년 ‘국가철새연구센터’가 들어선 건 이런 이유에서다.


▲ 소청도는 많은 철새들이 거쳐가는 중간 기착지이다. 이 때문에 새를 관찰하는 ‘탐조’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 사진은 2019년 소청도에 들어선 ‘국가철새연구센터’ 전경.

소청도에 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동서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걷기만 해도 무수한 철새들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들의 이동이 집중되는 봄과 가을엔 더 많은 사람들이 소청도로 들어온다. 우리나라 탐조인구는 20만 명에 이른다.

몇 개월 전 소청도엔 전문탐조그룹이 둥지를 텄다. ‘조류충돌방지협회’란 이름을 가진 이 그룹은 소청도에 머물며 새를 보호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단체이다. 전도현(53) (사)조류충돌방지협회 회장은 “연간 800만 마리의 새들이 유리창이나 방음벽 등에 충돌해 죽는다”며 “우리 협회는 새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부인 김대건 신부는 1846년 소청도를 거쳐 백령도 부근을 답사했다. 소청도에선 이를 기념해 김대건 신부의 동상을 세웠다.

최초의 천주교신부 김대건 소청도 다녀가, 1945년엔 포탄 터져 최악의 인명사고도

새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중간 기착지로 소청도를 오고갔다. 예동리 마을 산비탈 아래엔 교회와 성당이 나란히 서 있다. 그 뒤편 기슭에 갓을 쓴 인물의 동상은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부인 김대건 신부상이다. 구한말 대대적으로 진행된 천주교 탄압 속에서 김대건 신부는 천주교 전래에 목숨을 건다. 김 신부는 중국을 여러 차례 오가며 선교사의 입국과 연락을 위한 비밀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노력했다. 김 신부는 1846년 소청도를 거쳐 백령도 부근을 답사했는데 백령도에서 관군에 잡혀 서울로 압송된 뒤 새남터에서 순교한다.


▲ 광복 직후인 1945년 10월 소청도에선 바다에서 떠내려온 폭탄이 터져 주민 59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는다. 2000년대 초반 당시 소청도 이성만(56) 이장은 사고 당시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비를 세웠다.

광복 직후인 1945년 10월 소청도에선 최악의 인명사고가 터진다. 폭탄이 터져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소청도엔 일제가 태평양전쟁 때 인천앞바다에 설치한 기뢰 가운데 3기가 떠내려 왔다. 이 중 1기는 자동폭발했고 2기가 남았는데 주민들은 이 중 1기를 해체해 연료도 사용했다. 10월 9일 마지막 남은 1기를 해체하던 중 한 주민의 실수로 폭발하고 만다. 이 사고로 59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당한다. 2000년대 초반 당시 소청도 이성만(56) 이장은 사고 당시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비를 세워 이들을 추모해오고 있다.

2022년 9월 소청도 유일 음식점 ‘해변식당’ 생겨, 홍어 홍합 등 관광객 입맛 돋궈

소청도엔 2022년 9월5일 유일한 ‘식당’이 하나 생겼다. ‘해변식당’(032-836-5353)은 소청도 마을사람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문을 연 식당이다. 해변식당엔 홍합밥, 톳(강투)밥과 같은 소청도 특산물 요리가 풍성하다. 홍어요리와 삐뚜리(소라)회, 우럭매운탕과 삼식이탕, 홍합라면도 인기 메뉴이다. 소청도는 ‘리’ 단위로는 유일하게 우체국이 있는 섬이기도 하다.


▲ 지난 9월 5일 소청도엔 유일한 식당인 해변식당이 문을 열었다. 소청도 마을사람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문을 연 이 식당에선 홍합밥, 톳(강투)밥, 홍어요리와 삐뚜리(소라)회, 우럭매운탕과 삼식이탕, 홍합라면 등 특산물 요리가 풍성하다. 해변식당 전경.

소청도 사람들은 대대로 바다에서 삶을 길어 올리며 살아왔다. 소청도 토박이 노진호(62) 씨는 “소청도 사람들은 미역 팔아서 보리쌀 좁쌀과 바꾸어먹고 홍어 잡아서 전라도에 가서 성냥, 고무신, 비누 같은 생필품과 바꾸어 왔다”고 말했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직선거리로 약 166km. 소청도는 남북방향 폭이 약1km, 동서가 약 5km 정도인 작고 긴 섬이다. 동쪽의 해발 174m의 봉우리와 노화동 주변 해발 140m 봉우리를 제외하고는 전체가 100m 이하 구릉으로 이뤄져 있다.

시나브로 해가 바다 밑으로 가라 앉으면서 소청도 앞바다가 붉게 물든다. 주홍빛 하늘이 검푸르게 변하면서 소청도등대에 불이 들어온다. 360도 회전하는 등대가 밤바다에 빛을 뿌리며 명멸한다. 등대불이 꺼지면 소청도엔 희망찬 여명이 밝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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