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록빛 바다와 그 위에 부서져 내린 가을햇살. 망망한 바다 물결위로 윤슬이 반짝인다. ‘바다가 주는 위안이 이토록 클 줄이야.’ 덕적도의 시크릿가든 ‘바갓수로봉’(용담)에서 황해를 바라보니 괜실히 가슴이 뭉클해졌다. 덕적도의 바다는 이름처럼 그 화려한 풍광 자제만으로도 이미 ‘덕을 쌓고’ 있었다.

▲ 덕적도는 소나무의 섬이라 할수 있다. 눈부시게 고운 모래사장을 따라 푸르게 우거진 소나무숲은 덕적도의 자랑이다. 진리 덕적고등학교, 밧지름·서포리해변에는 멋지고 근사한 소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특히 서포리 소나무들은 수령이 2,300년은 족히 넘는 아름드리 노거수가 대부분이다.
덕적도는 소나무의 섬이라 할수 있다. 눈부시게 고운 모래사장을 따라 푸르게 우거진 소나무숲은 덕적도의 자랑이다. 진리 덕적고등학교, 밧지름·서포리해변에는 멋지고 근사한 소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특히 서포리 소나무들은 수령이 2,300년은 족히 넘는 아름드리 노거수가 대부분이다.
김남학(62) 서포리 주민은 “이 소나무숲은 방풍림으로 동네 주민들이 심은 건데, 옹진군에 개발을 조건으로 기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서포리와 밧지름 해변은 백색의 고운 모래가 펼쳐져 오랫동안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덕적의 대표 관광지다.
전망맛집 ‘비조봉’, 일몰명소 ‘능동자갈마당’ 가볼 만
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모습을 닮았다 해서 지어진 비조봉(飛鳥峰)에 오르면 덕적도 전경이 파노라마로 들어온다. 진리 공소에서 출발하는 등산로를 선택했다. 약 1시간 정도 오르니 비조봉 전망대가 다가온다. 본래 이 길은 덕적주민들이 동네에서 동네로 넘어가기 위해 만든 산길이었다.
비조봉 가는길은 산길 중간 중간엔 소나무 군락지를 만난다. 청량한 솔 향기가 폐부를 시원하게 해준다. 비조봉에 오르니 사방이 탁 트였다. 소야도, 먹도, 선갑도, 문갑도, 지도, 각흘도, 굴업도 등이 가깝게 보인다. 하산길은 비조봉에서 서포리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서포리로 내리오는 길은 자갈, 암석이 많아 오를때보다 힘겨웠다.

▲ 전망맛집 비조봉. 비조봉에 오르니 사방이 탁 트였다. 소야도, 먹도, 선갑도, 문갑도, 지도, 각흘도, 굴업도 등이 가깝게 보인다.

▲ 능동자갈마당(쑥개)도 덕적도의 아이콘 가운데 하나다. 화려한 일몰로 유명한 이곳은 땅거미가 내려 앉을 때 환상적인 빛의 마술쇼가 펼쳐진다.
능동자갈마당(쑥개)도 덕적도의 아이콘 가운데 하나다. 화려한 일몰로 유명한 이곳은 땅거미가 내려 앉을때 환상적인 빛의 마술쇼가 펼쳐진다.
자갈마당에는 또 다른 얼굴이 숨어있다. 바닷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갯티길과 주상절리 해금강의 비경이 펼쳐진다. 예전 능동자갈마당엔 작고 특이한 오석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큰 돌들만이 깔려있다. 주민들은 옹진섬의 모래채취로 작은 돌들이 다 휩쓸려 간 것이라 말한다.
자갈마당엔 바람개비 모양의 풍력시설이 돌아간다. 에코아일랜드 덕적도를 상징하는 시설이다. 이곳에서는 섬의 명물인 낙타바위도 볼 수 있다.
섬 서쪽의 명불허전 ‘바갓수로봉’ 경치 장관
서포2리 벗개저수지를 끼고 산을 오르면 덕적도의 비경을 만난다. ‘바갓수로봉(용담)’이 그것이다. 이 산에 무슨 비경이 있을까 하고 숲을 내려가는 순간 탄성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덕적도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제1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덕적도 토박이들이 제1비경으로 추천하는 바갓수로봉(용담). 웅장한 바다를 바로 코앞에서 볼 수 있다.
섬의 가장 서쪽 끝에 ‘명불허전’이 있었다. 바갓수로봉에서 바라본 서해. 짙은 청록색의 물결치는 바다 저 멀리 굴업도와 문갑도가 눈에 들어왔다. 언덕에서 조붓한 숲길을 따라 바다쪽으로 더 내려가니 기암절벽에 눈이 호강한다.
덕적도 슈바이처 최분도 신부, 최신식 병원·농경지 조성
덕적도엔 푸른눈의 목자 ‘최분도 신부’란 종교인이 있었다. 1966년 덕적도에 부임한 후 섬개혁 운동에 헌신한 미국인이다. 그는 60년대 서포리에서 전기를 생산했고, 상수도공사, 복자 유베드로병원 설립, 해태양식, 유치원설립, 중국인 이주민 양로원 운영 등 당시 국내 여건으로는 꿈도 못 꾸었던 혁신적인 일들을 해냈다.

▲ 60년대 덕적도에서 섬개혁 운동에 헌신한 최분도 신부 공덕비. 덕적도 주민들은 그의 헌신적인 노력을 기념하고자 서포리마을 입구에 공덕비를 세웠다.
최 신부가 덕적성당 옆에 조성한 복자 유베드로병원은 내과, 외과, 산부인과, X-선과가 있었고, 현대의료기구와 약품들을 미국이나 서독에서 들여온 최신식 병원이었다. 의료 혜택을 받은 주민만도 연 7만 명에 달했다.
최 신부는 서포2리에 대규모 간척사업을 벌여 농경지를 만들었다. 이때 간척지사업으로 27만평의 농토가 확장됐고, 덕적도주민 4개월치 식량을 증산시키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뒀다. 섬사람들은 최분도 신부의 고귀한 업적을 기리고자 서포리 마을 입구에 공덕비를 세워 그를 오래도록 기념하고 있다.

▲ 서포2리에 위치한 벗개저수지와 경작하고 있는 논. 최분도 신부와 섬 주민들이 대규모 간척 사업을 벌여 농경지 27만평을 확장했다.
국민관광지1호로 선정된 서포리해수욕장
1970년대 덕적도 서포리해수욕장은 가장 가고싶은 관광지 중 하나였다. 끝없이 펼쳐진 하얀 백사장, 유혹하듯 넘실대는 푸른 바다가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서포리해수욕장은 1957년에 개장했고, 1977년 서해안의 국민관광지로 1호로 지정됐다. 8,90년대 서포리 해수욕장은 휴가철만 되면 텐트로, 인파로 꽉 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당시 민박은 방이 작아 둘이 누우면 딱 맞는 규모였다. 집에 방이 한두개 만 남아도 민박을 쳤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수학여행 왔을 정도로 유명했다.

▲ 고운 모래와 해변이 아름다운 서포리해수욕장. 서포리해수욕장은 서해안의 국민관광지 1호였다.
‘작은 인천’으로 불린 북리, 어업 황금기의 시절
덕적도는 어족자원이 풍부해 70년대까지 어업의 황금시기를 누렸다 그 중심에 북리(쑥개)가 있다. 당시 북리는 민어파시의 성지였다. 1954년 덕적도 인구가 1만2000명이 넘었는데 이중 40%가 피란민이었다. 지금 덕적도 인구가 2000명 정도인 걸 비교하면 많은 사람들이 작은 섬에서 모여 산 셈이다.
북리는 황해도에서 피란민들이 정착하면서 어업을 꽃피운 동네다. 민어파시로 돈벌이가 되자 선원, 술집, 색시들이 많이 들어왔다. 이 당시 북리에는 다방, 극장, 약방, 여관, 공중목욕탕까지 들어서 ‘작은인천’으로 불렸다. 북리항은 배들로 빼곡했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황금의 바다가 됐다. 어업이 쇠퇴하면서 북리의 전성기는 막을 내렸고, 이후 동네는 오랫동안 느리게 흘러왔다.

▲ 덕적도는 어족자원이 풍부해 70년대까지 어업의 황금시기를 누렸다 그 중심에 북리(쑥개)가 있다. 당시 북리는 민어파시의 성지였다. 1954년 덕적도 인구가 1만2000명이 넘었는데 이중 40%가 피란민이었다. 사진은 북리(쑥개)마을 풍경.
덕적도는 60년 전부터 주민들간 신뢰와 협동으로 마을공동체가 잘 유지돼왔다. 주민들이 힘을 합쳐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는 공동체 역사는 지난 1994년 굴업도핵폐기장 반대투쟁에서도 진가를 드러냈다.
섬에서 주민들의 신망을 얻고 있던 어른들이 모여 핵폐기장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했고, 마을 주민들이 결집하여 결국 굴업도 핵폐기장건설을 백지화 시켰다.
'산행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천 섬 여행 팔미도 등대 (2) | 2023.08.31 |
---|---|
인천섬여행 문갑도 아름다운산행 (2) | 2022.12.17 |
인천 섬여행 연평도에서아침 (2) | 2022.12.17 |
사람들의 발길이 적은섬 백야도 신비의섬 (4) | 2022.11.12 |
천연 신비의섬 소청도의 신비를 벗기다 (0) | 2022.11.10 |